◑ 마음이 가난한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나온 무리들은 재물이 행복의 조건이 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빈곤은 세상의 비참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물질적 빈곤과 정신적 빈곤이 서로 같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은 피차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람은 자기 만족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의 좋은 예로서 자기의 옛 곡간을 헐고 더 크고 좋은
곡간을 지어서 추수한 곡식을 넣기로 결심한 농부를 들 수 있습니다.(눅12:16-21) 이 농부는 어떤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완전히 자기 만족과 자기 긍정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그토록 강조하신 바 마음이 가난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의 나약함을 압니다. 그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앞으로 성취해야 할 더 많은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는 현재의 성취를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 앞에 놓여있는 더 큰 승리를
바라봅니다.
마음이 부한 자와 마음이 가난한 자의 큰 차이점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마음속에 생각하기를 자기가 영적으로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완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필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비유는 그가 자기에게만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고 하나님께 자기가 영적으로 부유하다는 사실로 인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와 반면에 세리는 자기의 영적 빈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나약함을 시인했기 때문에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대체로 영적으로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경을 연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독선적이고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며 자기가 한 일은 틀림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스스로 자만하고 교만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바리세인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기본적인 욕구가 자기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서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는 성취감 입니다. 마음이 부유한 사람은 자기가 처해있는 현실에 만족하기 때문에 성취를 위한 야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개선의 여지가 없고 그들의 인격은 침체해 버리고 맙니다.
반면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더 높은 것에 대한 꿈을 가집니다. 그들은 결코 스스로 만족하거나 자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성취를 자극합니다. 이것은 행복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배우기를 힘쓰고 꾸준히 더욱 좋은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할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12-14)고 했습니다. 빌립보서의 가장 중요한 단어가 '기쁨' 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 영의
목마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왕성한
식욕은 건강의 증거가 됩니다. 먹지 못하는 사람은 병에 걸리기 마련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나쁜 음식을 먹거나 불규칙한
식사를 하게되면 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 굶주림에도 적용이 됩니다. 의에 주리지 아니하면 사람은 영적으로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가 장차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꿈이 자기의 이러한 영적 굶주림의 상태를 자극시키지 않는 한 그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르기 전에 먼저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하다고 해서 반드시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영적인 양식을 갈망하지도 않으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금식이 우리의 굶주림을 둔하게 만드는 것과 같이 영적인 금식도 영의 양식을 갈망하는 욕구를 둔하게 만듭니다.
예수가 말씀하신 의는 적극적인 덕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생겨난 태도입니다.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서 애쓰는 부모의 열심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의 좋은 예가 됩니다.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즉, 그들의 자녀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세계를
갈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것은 그들에게 영적 세계를 갈망하게 될
때에만 행복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예수는 영적 계명에 대한 복종을 요구합니다. 의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
표현되는 방식은 다른 복들에 대해 생각할 때 취급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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