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청결한자는

redcap 2005. 8. 26. 11:06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040125 주일예배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예수님에게 12제자,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을 감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또 그 감독들의 제자들을 교부라고 불렀습니다. 그 교부 가운데 시므온이라는 교부가 있습니다. 시리아의 시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시므온은 오늘 본문의 말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것이요 "라는 말씀을 듣고 회심을 합니다.
회심한 후 어떻게 해야 마음이 청결해질 수 있으며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수도사가 됩니다.
그런데 수도사가 된 후 그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은 "더 깊게 파라"는 것입니다. 수도를 한 지 10년이 지난 후 그는 수도원을 떠나 은둔자가 되어서 발에 쇠사슬을 묶고 계속 고행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기도 요청을 하러 몰려들자, 시므온은 자신의 수행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깊게 파 둔 구덩이에 기둥을 세운 후 그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기둥 위에서 작은 방을 짓고 무려 37년간을 생활합니다.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서 입고, 목에도 쇠사슬을 칭칭 매고 하루에 2,000번 이상 하나님께 절을 했고, 하루에 두 번 회개의 설교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3미터의 높이였던 기둥이 나중에는 20미터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므온의 제자들도 스승처럼 기둥을 세우고 성찬을 스승에게서 받기도 했습니다.
이 시므온의 영향으로 5세기부터 7세기까지, 그러니까 451년부터 600년 까지 수도사 사이에서는 기둥에 올라가 수도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시므온과 같은 수도사들이 평생을 어렵사리 고행을 하면서 지냈습니까?
그들은 마음이 청결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청결해야 합니까? 마음입니다. 주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팔복은 자세히 보면 모두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팔복의 처음은 마음이 가난한 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마음이 깨끗한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대신할 왕을 찾으실 때 선지자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모아놓고 외모가 준수하고 건장함을 보았지만 주님은 그런 것으로 사람을 찾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보면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은 마음입니다. 주님은 머리를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총명하거나 지적인 사람들을 칭찬하시지 않았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항상 주님의 관심은 마음에 있었습니다.
렘17:10에서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라고 했습니다.
잠16:2에서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중요합니까?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모든 희로애락의 원천이 됩니다. 마음은 인격의 중심이요 몸의 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이 추해지고 흐려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4:23절 말씀을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태리의 문인 빠삐니는 말하기를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어집니다.(클레멘트 스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져도 사람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렘 17:9-10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를 잘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나쁜 생각은 항상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데, 곧 음란, 살인, 도둑질, 간음, 탐욕, 악독, 사기, 방탕, 질투, 배신, 교만 같은 것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틴루터는 말하기를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듯이 우리 마음을 다듬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은 '성령과 악마가 싸우는 곳입니다. (토스트예프스키)'사도바울도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더라도 내 맘속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온갖 유혹을 다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노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얼마나 우리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싸웁니까? 얼마나 많은 갈등 속에서 삽니까? 우리 속에 삶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나의 삶의 기준으로 삼지 마십시오 , 세상의 지식과 경험은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자신의 의지와 마음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루에 수도 없이 갈팡질팡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의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기 원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깨끗한 마음, 속이 잘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마음을 말합니다.
청결한 마음은 갈리지 않은 마음입니다.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전심으로 향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이 행한 것을 보십시오 다윗은 늘 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정직을 쫓아서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려고 애를 쓴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었던 사람입니다.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다니엘 역시 자신이 사자 굴에 들어가기 까지 "뜻을 정하여"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갔습니다.

청결한 마음은 다른 것들이 섞이지 않은 마음입니다.
순금이 처음부터 생겨나는 곳이 없습니다. 여러번 뜨거운 풀무불속에 들어가서 불순물은 다 빠지고 그 후에 순수한 금이 됩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부패되어있고 불순물들이 많이 섞여있기 때문에 고난의 풀무를 거쳐야 청결한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는 인생의 어려운 시험이 있었습니다. 모든 자녀가 죽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아내까지 욥에 대해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러한 가운데서 많은 신앙의 훈련을 받고, 자신에게 당한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분명한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욥기 42장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붙잡고자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도 포기 못하고 저것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사이에도 양다리를 걸치는 것은 썩 보기 좋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좋아하는 듯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 또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사모하는 이중적인 사람은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듯 하면서 마음 한 편으로 세상의 온갖 것들을 모두 좋아하고 사랑하는 복잡한 사람은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마6:24).

미국의 우주비행사인「제임스 어윈」대령은 아폴로 15호의 선장으로 우주를 비행할 때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죄 많은 인간이 지구를 떠나 달에까지 가게 된 것이 위대하고 놀라운 일이 아니라,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이 사는 작은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감격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그가 달에 갔다가 돌아와서 헝가리의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어떤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소련의 우주인들은 달의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왜 우주에서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어윈 대령이 대답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까? 그 당시에 단순하지 않은 마음, 깨끗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주님은 이중적인 마음을 즉시 알아채십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지내실 때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소위 종교지도자 라고 하는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행위로는 온갖 거룩한 척은 다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 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5-28). 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젠 거짓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거짓 헌신을 버려야 합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헌신하다가 망한 부부입니다. 왜 헌신하다가 망했습니까? 청결한 마음이 아니라 계산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헌신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짓으로 헌신하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젠 거짓과 가짜의 가면을 벗고 우리의 실체를 하나님께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투명해지십시오. 지금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것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의심한다면 두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6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한번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성경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거룩하신 예수님을 대면하면서도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10)

그러면 하나님을 본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본다'라는 것은 거룩하시고 영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인지하고 경험하는 심오한 영적 세계를 말합니다.
또 '하나님을 본다.'고 할 때 이 '본다'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가 또 하나 있습니다. '안다'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본다'와 '하나님을 안다'는 이 두 말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 예로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말씀 중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할 말씀은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합니다. 세상의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침안개가 사라지듯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까닭에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것은 영원합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세상의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하신 영원한 축복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깨닫고 사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천국을 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또 바울이 알게 해 달라는 기도는 우리의 마음속에 빈 자리가 없도록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가득하게 채워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마음의 눈은 더 밝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보게 됩니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하나님은 희미하게 보이고 작아 보입니다. 성경 말씀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가득히 담고 있는 사람은 벌써 하나님을 아는 영적 지식을 상당히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모르는 사람에 비해서 훨씬 더 하나님을 가까이 보고 크게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때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 에베소 교인을 위해서 하나님을 더 알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 기도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우리의 육안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기 때문입니다.(요3:6)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출33:20). 예수님도 이 세상 사람으로 하나님을 직접 본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요6:46).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영적인 방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영적으로는 느낄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어디서 부는지 모르지만 바람이 불면 우리는 바람을 느낄 수 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간혹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게도 하십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 Heaven is so real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토마스 주남이라는 여인입니다. 토마스 주남 여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불신 부모의 외딸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습니다. 1992년2월에 난생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후 주님을 뜨거운 열정으로 사랑하게 된 그녀는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주님과 함께 보냈습니다. 2년후 그녀는 워싱턴州 타코마市에 있는 "이웃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서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처음으로 뚜렷이 보았습니다.
1995년에는 교회에 안에 있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체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1월에 주님과 함께 다녀온 일련의 천국 방문은 그녀의 삶과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이 책을 세번이나 읽고나서고 한국성도들도 읽고 새롭게 변화받아야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번역하셨습니다.
조목사님은 역자서문에서 이 책을 신학적이거나 교리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그저 천국을 구경한 토마스 여사의 진솔한 체험이 사실 그대로 담긴 기록으로 받아들이고 읽었으면 하고 바램을 이야기 합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토마스 주남이라는 사람을 선택했을까?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체험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 중에 하나님이 토마스 주남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네 마음이 순결하고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토마스 주남 여사의 마음이 청결한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 책의 227페이지에 보면 주님이 주남 여사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순결하고 순종적인 자녀들, 곧 자신의 삶에서 나를 우선으로 두는 자들을 택한다. 너희는 나를 기쁘게 하려고 아주 열심히 노력하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너희의 마음만을 본다는 사실이다. "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설교를 들어도 성경 말씀을 읽어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청결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지적하신 두마음을 우리가 품고 있지는 않았는지요? 하나님을 나의 삶에서 최우선으로 두었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육신적인 눈꺼풀이 있었다면 씻어내야 합니다.
의심을 버리고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죄악을 품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지 못했음을 회개하십시오 두마음을 품고 살았던 것을 고백하십시오

세상 사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더 이상 육신을 추구하며 살지 않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면 우리의 마음의 눈이 열리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을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느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영적인 것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업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게 하심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입니다. 육안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스데반을 보세요 그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게 바로 하나님을 보는 자에게 주어지는 최후의 승리요,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청결한 마음을 갖는 것은 일순간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마음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단을 해야 합니다.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을 우리의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십시오
늘 주님앞에 서 있다는 신전의식을 가지십시오
한눈을 팔지 말고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십시오
한순간에 우리가 거룩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편단심 끊임없이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이 순전하고 하나님만 바라는 청결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연속이 하나님을 보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의 힘  (0) 2005.08.26
화목, 핍박 받는 자의 복  (0) 2005.08.26
애통하는자, 긍휼히 여기는 자  (0) 2005.08.26
온유한 자, 청결한 자  (0) 2005.08.26
가난한 자, 의에주린자  (0) 200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