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보장경(雜寶裝慶)>이란 책에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나온다.
말
그래로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7가지 보시(普施)''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뭔가 있어야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광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긴 하다.
그러나 베풀고 나눈다는 것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다.
돈이 있어야만 베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교만이다. 돈이 없어도 마음이 있고,
정성이 있으면 베풀 수 있다. 그렇게 베풀 수 있는 7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화안시(和顔施)''다.
"부드러운 얼굴로 베풀라"는 뜻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다.
밝게 웃는데 대적할 장사 없다. 얼굴빛이 좋으면 만사가 좋은 법이다.
부모에게나 자식에게나 배우자에게나 상사에게나 웃는 낯빛과 부드러운
얼굴은 최상의
존중이요, 대화법이다.
아침을 부드러운 얼굴로 시작하는 사람은 하루가 좋고,
하루를 좋은 얼굴로 사는 사람은 인생이 피기 마련이다.
자신의 얼굴 자체를 성형하는 것은 돈과 위험부담이 수반되어 쉽지 않지만,
자신의 있는 얼굴 그 자체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의 태도다. 스스로 부드러운 얼굴을 선택하라.
그러면 만사가
풀린다.
둘째는 ''언사시(言辭施)''다.
"좋은 말씨로 베풀라"는 말이다. "말 한 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씨 곧 말 씀씀이가 사람의 품격을 가늠케 한다.
큰소리 내는 사람보다 작지만 공손하고 차분한 말씨로 일관하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웅변조로 떠드는 사람보다 어눌할지라도 진실이 담긴 말씨가
훨씬 더
호소력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말씨에는 울림이 있다. 그래서 사람을 감동시키고, 감화시킨다.
좋은 말씨는 구태여 유창한 말이 아니어도 좋다.
논리정연한 말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기면 그만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말씨가 곧 좋은 말씨다.
배려하는
마음과 좋은 말씨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심시(心施)''다.
즉, "마음가짐을 좋게 해
베풀라"는 말이다.
마음가짐을 좋게 한다는 것은 마음을 늘 안정시켜 평정되게 함으로써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좋을 때 좋은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또 슬플 때 슬픈 마음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너무 좋아하지 않고,
아무리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않는 평정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칫 내가 너무 좋아해
상대방을 민망하게 하지 말아야 하겠고,
내가 너무
슬퍼해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지 말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넷째는 ''안시(眼施)''다.
"눈빛을 좋게 해
베풀라"는 말이다. 눈빛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예로부터 눈빛을 바로 하는 것이 수양의 첫걸음이라 했다.
눈빛이 너무 강해도 안 좋고, 눈빛이 흐릿해도 안 된다.
눈빛은 정갈하며 차분해야 좋다. 어른을 대할 때, 자녀를 대할 때,
아내와 남편을 대할 때 그리고 상사와 동료를 대할 때,
좋은 눈빛을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교감은 없을 것이다.
눈은 매초 10억 개의 메시지를 뇌에 보낸다고 하지 않던가.
이것은 신체의 다른 부위 전부가 보내는 메시지 양의 두 배라고 한다.
그만큼 눈빛은 신체상의 가장 크고 강력한 미디어다.
그 ''눈의 미디어''에서 ''좋은 눈빛'' 곧 좋은 메시지,
긍정과 낙관의
메시지가 송출되도록 애쓰라.
다섯째는 ''지시(指施)''다.
"지시나 가르침을 고운 말로 하라"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부려야 할 때 어떻게 부리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시켜도 정작 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하면서 일을 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잔심부름을 시켜도 일하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또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도 상대를 업신 여기면서 하는 것은
결국 서로에게 독(毒)이 되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평범한 이야기일지라도
상대를 존중하면서 하는 것은 결국 서로에게 약(藥)이 되고,
진정한
가르침이 되는 법이다.
여섯째는 ''상좌시(牀座施)''다.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라"는 말이다.
같은 직장 동료끼리 서로 앉을 자리도 설 자리도
없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물론 경쟁도 좋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지를 완전히 "찍어내겠다"는
드라마 ''여인천하''식의 발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
진짜 크게 되려거든 숙적 같은 동료일지라도
그의 앉을 자리를 도려내지 말라.
좀 더 크게 보고, 오히려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라.
좋은 경쟁자는
좋은 코치 이상이기 때문이다.
협상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의자를 빼놓고 협상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상대의 입지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몰아만 붙인다고 능사가 아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던가.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가면서 협상도 해야 뒤탈이 없다.
일곱째는 ''방사시(房舍施)''다.
"쉴 만한 방을 내주라"는 말이다.
아니,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좋은 말씨를 쓰고 마음가짐을 좋게 하고
눈빛을 바로 하며 고운 말로 지시하면서 상대의 앉을 자리를 봐주는 것까지도 수용하겠지만,
이젠 아예 쉴 만한 방 자체를 내주라니? 그러면 나는 어디 서 있으란 말인가?
이런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그러나, 이 좁아 터진 중생아!
내 방에 들어와서 쉬는 이상 그 사람은 이미 내 사람이다.
자기 사람을 만드는데 까짓 방 좀 내주면 어떠냐?
자꾸자꾸 사람들이 내 방에 들어와 쉬도록 해보라.
인맥은 저절로 형성된다. 사람이 자산이고, 보배가 아니더냐?
사람들에게 쉴 만한 공간을 내주는 만큼 나의 영역은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기꺼이
쉴 만한 방을 내주라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새의기도 (0) | 2005.09.05 |
---|---|
허수 아비 같은 근심 (0) | 2005.09.05 |
하나님과의 인터뷰 (0) | 2005.09.02 |
내 마음을 물들이는 그대의 사랑 (0) | 2005.09.02 |
[스크랩] *;* (0) | 2005.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