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정경 결정의 원리에 관한 연구
Ⅰ. 서 론
1. 문제제기의 의의
우리는 신약의 정경들을 아무런 의심없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신약의 저술들이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정경으로 인정되는데는 오랜 기간동안 많은 논란과 복잡한 과정들이 있었다. 그것은 초대교회 때에는 많은 종류의 경건한 신앙적 저술들이
교회 안에 돌아다니며 읽혀지고 있었고 그러한 글들은 모두 경건한 성도들에 의하여 쓰여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 저자들이 대부분 예수님의 직접
제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예수님을 보았고 사도들의 직접 혹은 간접적인 제자들이었다는 사실은 더욱더 이러한 논쟁을 어렵게 만들었다.
교회는
전통을 매우 중시한다. 물론 이 말은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전통을 성경의 권위에 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초대 교부들의 증언을 당시 교회의
대표로 보고 하나님의 교회가 취했던 일반적 입장을 파악하려는 의미에서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경 수납과정이나 공관복음서 문제 등을
논할 때 그 증언들을 참조하고 뚜렷한 이유가 없는 한 사실로 받아 들인다.
그러나 정경 수납과정에서 여러 교부들의 입장이란 명백한 공통점이
있는 동시에 모호한 상이점도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문제의 소지를 남겨둔다. 이떤 성경은, 예컨데 히브리서는 4세기 중엽까지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도대체 언제부터 누가 정경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왜 정경으로 인정하였을까? 이처럼 히브리서의 정경형성 과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정립하려면 우선 정경의 결정원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원리에 의해 왜 교부들은 히브리서만은 정경에
넣기를 주저해 왔는가? 그러면서도 왜 결국은 정경에 포함시키게 되었는가?
성경은 다만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만 언급할
뿐 어느 곳에서도 이것이 성경이며 여기까지가 성경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이런 면에서 아무도 이것이 정경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언제부터
성경은 정경으로 인정되었으며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이것이 정경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우리가 배척하는 외경 혹은 위경은 어떤 이유로 정경으로서의
가치가 없는가?
2. 용어 정의
먼저 정경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교회에서 ‘정경’이란 말을 사용할 때 그 의미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져 신자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하고 절대적 규범이 되는 규범적 성경 목록을 가리킨다. 이 정경이란 단어는 헬라어 καν ν에서 왔는데 이 καν ν은
문자적으로는 갈대, 곧은 막대기, 곧은 장대를 표시하다가 차차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직선자, 표준, 규범, 기준, 경계, 표 등의 의미로 사용되어
문 에서는 진행의 규칙을, 연대에 대해서는 연대표를, 문학에서는 저자의 목록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것이 점차 초대 교부들과 공의회에서
하나님의 영감된 성경을 ‘καν ν’이라 지칭하게 되었던 것이다.
3. 연구 방법
교회는 전통적으로 몇몇 책들 외에는 처음부터 아무런 �{없이 성경을 받아들였다. 사 정경론 논쟁은 이렇게
�{없이 받아진 책들을 근거하여 펼쳐졌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미 전통적으로 인정되어온 4가지 정경 결정 원리를 중심으로
그런 원리들이 과연 가능한가를 살피고, 비판하고, 확증하는 것을 방법과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
Ⅱ. 본 론
1. 일반적으로 체계화 되어 있는 정경 결정 원리
정경 결정 원리에 대해 이미 정립되어온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네가지이다. 첫째는
사도성인데 그 작품이 사도성을 띠고 있어야 권위가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영감성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고 기록한 책이라는 증거가 있어야
수납되어졌다는 것이며, 셋째는 보편성으로 초대교회가 이의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예배시에 읽었으며 생활과 믿음의 표준이 되는 말씀으로
받아들인 책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그 내용이 구약의 그것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네가지 학적 이론은 여전히 석연치
못하고 불충분함을 느끼는 것은 각 용어(사도성, 영감성, 보편성, 일치성) 등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하면 도대체
사도성이란 말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염감성의 근거는 어디를 표준으로 하는가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구에서는 정경 결정 원리의 한 표준인 사도성의
의미를 밝히는 것을 중심으로 그것에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한다.
2. 사 도 성
전통적으로 인정되는 4가지 정경 결정 원리 중에서 첫번째로 꼽히는 것은 사도성 (Apostolic Origin)이다. 그 은 예수께서
자기의 사도로 12사람을 택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신약의 저자들은 자신이 쓴 책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고(히 1:1-2; 갈 1:11-12; 고전 11:23, 15:3), 신약의 각 책들은
모두 독자적 신임성을 가지고 있다.
사도의 권위에 대해서 R.L. 해리스는 요 16:13을 근거로 “성경은 첫째로 사도들에게 약속된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한다. 또 예수님은 요 14:26에서 말씀하시기를 보혜사가 와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시리라”고 하셨다.
신약시대에 사도들은 교회로부터 편지를 받기도 하였다(고전 7:1). 그러나 그와 같은 편지들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다. 뿐 아니라 초대 교부들의 글도 정경에 포함 되지 않았다. 클레멘트, 이레니우스, 폴리갑은 모두 그들 자신들을 12사도들과
분명하게 구별을 지우며 12사도 이외의 다른 이들을 사도로 부르지 않았다.
사도들의 기록들은 스스로 그것들이 권위있고 영감되었다고
주장한다. 고전 14:37에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 하고 있고, 계시록 1:3에서 요한도 이 책의 기록들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복이있다고 말한다. 또한 계시록 22:19에서는 이 예언의 말에 더하거나 빼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
더 재미 있는 것은 딤전 5:18에서는 눅 10:7을 인용하면서 “성경에 일렀으되”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근거들로부터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확고한 결론은 신약성경 대부분은 마땅히 수납되고 복종되어져야 할 것으로 기대하고 기록 되어졌다는 것이다.
사도가 영감으로
말하고 기록하였다고 주장하였다는 결론은 어떤 이들이 고전 7장을 근거로 반대한다. 이 곳에서는 3번이나 자기 말과 주의 명령을 대조시키고
있다.(7:6,10,12) 그러나 우리가 만일 이 견해를 채용한다면 고전 7장은 고전 14:37에 반대된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말을 주의 명령으로 받으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반대에 대해서 어쩌면 위와 같은 반론도 불필요 할 것이다. 왜냐하면 7장의 구절들은 단지
이혼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명확한 말, 즉 마 19:9의말과 같은 인용이 없이 자신의 권위로 말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주의 명령이라는 부분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에서 분명히 보여준 부분을, 내 말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원리하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고전 7:40에서 바울은 자신의 의견도 영감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발달에 있어서의 사도성이 얼마나
중시되었는가는 교리를 위한 절대적인 자료들을 제공하려는 시도로 사도들이 저술한 것으로 위장한 거짓 작품들이 많았던 점으로 보아 알 수
있다.
3. 가능한 해결책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많은 문제를 남기고 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의 모든 책들은 사도들의 글이 아닐 뿐아니라
심지어 저작자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 글들도 있다. 이러한 책들에 대한 정경성 인정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적으로 성경은
교회나 공의회가 인정하고 수납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 안에 수납되어져 있는 정경 목록을 확인한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아무도 어떤 기준으로
정경성을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지 정경으로 받아져 있는 책들을 중심으로 어떤 기준이 거기에 작용하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면에서 지금까지 논의해 온 사도성이란 기준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도의 저작품이 아닌 책들에 대한 권위를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사도의 감독 또는 승인이라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신약 성경의 책들 중에서 실제로 사도들이
기록하지 않은 것들은 ‘사도적’인물들 - 사도들과 아주 가까이 있어서 그들의 일부를 수행했던 자들 - 에 의해 기록되었던
것이다.”
예를들어 마가복음은 마가의 권위가 아닌 베드로의 권위에 의해 수납되어진 것이다. Alexandria의 Clement는 마가가
베드로가 살았을 때에 기록하였거나 기록하기 시작하였다고 분명히 말한다. 파 아스는 사도성에 대해 분명히 둘째 복음이 마가 때문이 아니라 베드로
때문에 받아진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을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누가복음과 바울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작자 문제로 가장 논란이 많고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히브리서 문제도 이런 차원에서의 해결을 볼 수 있으리라고 본다.
클레멘트 자신은 “히브리인에게 보내는 서신을 바울의 것”으로 인용하여 말하고 또 그것은 히브리어로 히브리인에게 쓰여졌고, 누가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번역한 후 헬라인들의 사용을 위하여 출판했다고 하였다. 또 바울을 도와 바나바가 비서 역할을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경우
문체는 바울의 것과 다르겠지만 그 저작권은 사도 바울에게 있는 것이므로 사도성이란 기준으로 볼 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경을 결정하는 원리를 요약하면 성경책의 정경은 그 책의 저작권에 있다고 하겠다. 그 책이 구약에 있다면 그것이 선지자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받았던 것이며 그것이 신약편이라면 그것이 사도 곧 사도 자신이나 수하생, 혹은 필기자의 도움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영감된 것으로 인정된
것이다.
4. 기독론적 접근
우리가 사도성이란 말을 확정하기 위해 서두부터 주님이 사도들에게 자신의 말을 가르치고 또한 보혜사가 와서
사도들에게 모든 주님의 말을 기억나게 하였다는 것을 앞세웠다. 그것은 사도들의 권위가 사도 자신의 권위가 아니며 바로 주님의 권위에 근거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듀토잇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말씀의 내용은 기록된 복음서에서 연유되었지만 권위는 주님 자신의 인격에 귀속된다.”는 은
정경의 권위가 그리스도에게서 근거한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어 주고 있다. 듀토잇은 다른 곳에서 “사도성은 객관적 개념이다. 오직 그리스도에
전적으로 집중하고 그를 선포하는 것만이 사도적이다”고 였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권위란 개념을 극대화시킨 인물이었다. 루터는 사도성이란
말은 ① 사도에 의하여 씌여진 것과, ② 사도에 의해 쓰여지지 않았어도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면 사도성이 있다고 보았다. 즉 루터에 있어서
사도성이란 완전히 경전성이란 말과 �u &였다. 루터가 편집한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가르치지 않았다하여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계시록의 4권이 제일 마지막에 놓여있다.
루터는 또한 “그리스도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베드로, 바울이 가르쳤다고 해도
사도적이 아니다. 반대로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은 유다, 안나스, 헤롯이 가르쳤다고 해도 사도적이다.”라는 극단적 발언까지도 하였다. 루 의
발언은 비록 극단적이기는 하나 그러나 루터가 사도성의 순전히 형식적인 표준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선포라는 객체적 측면을 정경성의 결정적 규범으로
재 확립한 것은 여전히 그의 큰 공헌이라고 하겠다. 이 한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 이 실질적 혹은 객체적 원리를 배제하고 사도성의 주체적
원리만을 절대화시킨다면 사도가 그의 맘대로 이단을 소개한다 하더라도 사도가 그것을 말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규범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다.
성령의 내적인 증거는 정경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상 교회는 사도성이나 다른 원리들을
기준으로 정경성을 심사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가 받아들인 정경을 중심으로 정경성을 논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교회로 하여금 정경을 정경으로
수납하게 된 주체적 힘은 바로 성령님이신 것이다. 성령의 내적인 증거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정경으로 인정하게 만든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는 남아 있다. 성령의 증거는 필수불가결하다고 하더라도 각 사람이 성령 안에서 가지는 믿음은 동일하지
않으므로 그 차이들로 인한 논란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도 역시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으로 풀 수 있다. 결국 정경성에 대한
표준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다.
Ⅲ. 결 론
1. 내용 요약
정경을 수납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정경으로 인정하는 몇 가지 표준 중에서 가장 첫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원리는
사도성이다. 그러나 이 사도성이란 단지 사도가 직접 썼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록 사도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사도의 감독하에 사도가
승인하였음이 분명한 작품들도 사도성으로서의 권위를 가진다. 이런 원리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마가복음(베드로 설교)과 누가복음(바울
설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저작자 문제로 매우 논란되고 있는 히브리서의 경우도 이런 원리하에서 보면 그 저작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그
권위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는 것이다. 흔히 히브리서의 권위 문제 때문에 히브리서의 저작권을 바울에게 돌리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그러나 언어와
문장 스타일이 바울 서신의 다른 것과는 상이하다는 이유가 바울 저작설을 부인하는 이유가 되어왔다. 그 나 이런 문제들도 본론에서 취급했던 대로
바울이 히브리어로 기록하였고 누가나 바나바 또는 다른 신실한 동역자가 헬라어로 번역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권위 문제만은 간단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들이 기록했거나 또는 사도의 신실한 동역자가 사도의 이름으로 기록했거나 간에 그 책이 정경으로 수납되어진 것은 순수하게
주님 자신의 권위에 달려있다. 우리는 그 책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느냐하는 것에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요 5:39에서 예수님이 구약 성경을
두고 ‘성경은 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 책’이라고 하신 것을 우리는 신약에도 같이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2. 제한점 및 제안
본 연구에서는 네 가지 정경 결정 원리 가운데 단지 ‘사도성’ 하나만을 고찰하였다.
나머지 세 가지의
윈리들에 있어서도 어떤 도전이나 문제점들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여기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또 본 연구에서는 정경
형성 과정이 갖는 중요성이나 그것에서 파생될지도 모르는 문제점들도 연구 대상에서 제외 하였다. 이 부분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이미 이루어져
있지만 교회사적으로 논의 되었던 문제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권위로의 접근, 즉 기독론적 접근을 시도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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