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레데 섬을 답사하기 위해 그리스의 데살로니가에서 예정보다 앞당겨 그레데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정을 앞당긴 것은 그레데 섬의 남쪽에 있는 그리스 최남단 가우다(Gavda) 섬을 가기 위해서였다. 가우다 섬은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라라는 광풍을 만났을 때 간신히 피난했던 곳이다(행 27:14∼16).
나는 성경에 한번 나오는 이 섬이 실제로 지도상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레데에 도착해 구입한 상세한 지도에 ‘가브도스’(Gavdos)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순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나는 흥분과 기대감에 부풀어 택시에 몸을 싣고 가우다섬으로 출발하는 배가 있는 그레데 남쪽의 작은 항구 스파키온으로 향했다. 그레데는 동서로 길게 늘어선 섬으로 중앙에는 아주 높은 산맥이 동서로 길게 놓여 있다. 택시는 험한 산맥을 넘어 2시간30분만에 스파키온 항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우다 섬으로 가는 배는 하루 한 편밖에 없었고 그 배는 내가 도착하기 전 이미 떠나버렸다. 할 수 없이 항구 옆에 있는 사마리아라는 이름의 여관의 3인1실 방을 40유로를 주고 얻어 짐을 풀었다.

가우다섬은 오늘날의 그리스어로는 ‘가브도스’라고 하며 이탈리아어로는 ‘고조’(Gozzo)라고 한다. 이 섬은 그리스 최남단에 있는 작은 섬으로 마치 우리나라 최남단 섬인 마라도와 같은 곳이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가우다 섬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을 맛봤다. 바울이 탄 배가 풍랑을 피해 정박했던 곳에서 나는 바울의 체취를 느껴보려고 심호흡을 했다.
가브도스 항은 아직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아서인지 작은 상점만 하나 있을 뿐이었다. 주민은 50여명이며 교통수단은 짐을 실을 수 있는 1t 정도의 짐차뿐이었다. 그래서 스파키온 항구를 떠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잠시 섬을 둘러본 뒤 다시 스파키온 항구로 귀항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풍랑으로 인해 오후에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 배는 이튿날 오전 6시에나 출항한다는 것이다. 가우다 섬에 하루를 묵게 된 나는 긴 해안가를 따라 걸어 보기로 했다. 해안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난파된 배들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곳의 얼마나 파도가 심한지,바울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밤이 되어 우리는 해안가의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잠을 청하기 위해 섬에서 하나뿐인 상점에서 종이박스를 구해 바닥에 깔았다. 종이박스 위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니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아마 2000년 전 바울도 이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았을 것이다. 난 밤하늘의 별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바울을 로마로 압송해 가던 배가 항해 중 풍랑을 만나 그레데 남쪽 해안을 따라 표류하다가 이곳 가우다 남쪽 아래쯤 왔을 때 간신히 피난할 수 있었다(행27:15∼16)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 나 역시 풍랑을 만나 처량하게 해안가에 누운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어찌 잠이 오겠는가! 달려드는 모기떼 때문에 한숨도 못 자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수십여 차례의 성지를 답사했지만 이처럼 고생한 적이 없었다. 이라크의 갈대아 우르를 찾아갔을 때 섭씨 5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지 중 사막에 있는 돕가의 베두인 천막에서 잠을 잘 때도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았다. 바울이 풍랑을 만난 가우다 섬에서 바울이 당한 그 고생을 똑같이 경험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