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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화론과 밀러의 실험

redcap 2005. 8. 3. 16:57

I. 서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이런 의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본능적 요소가 강한 어린시절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자아의식을 갖게 되는 가장 초기에 가져지는 것이다.

이 물음에 관하여 어떠한 인간이라도 특정 형태의 해답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곧, 자신의 존재를 확증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임시적인 방법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형태의 방법을 가진다.
아니, 인간은 이 물음에 대하여 자신의 사고를 강요 당하고 있다.
그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연이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여러가지 생각과 사상들을 쏟아 부어 놓았다.

우주가 자신이고 자신이 우주라는 도교적 사고,
현재의 세상은 하늘의 이데아에 대한 그림자로 존재한다는 플라톤의 이원론적 사고,
우주는 끝도 시작도 없이 영원적 윤회를 거듭 한다는 불교적 사고,
그리고 도무지 모르겠다 내지는 알 필요도 없다는 불가지론 및 환락적 쾌락주의 등등 여러가지 형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이든,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분류해 보면,
인간은 우연히 생겼다는 사고와 특정 원인자에 의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필연적 사고로 분류된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현대인들에게 설득력 있고 호소력이 있는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진화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의 이름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고 어느 사상의 이름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다.
또한 군주나 정치의 힘을 빌어서 출현한 것도 아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과학'개념의 출현은 데카르트와 뉴턴과 관계가 깊다.

 

데카르트와 뉴턴 이후,
수학에 기초한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그 당시 사람들의 거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된 것이다.
진화론은 이렇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는 과학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 것이다.
이 가면을 벗기고 보면 진화론이라는 것은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의 합리화 내지는 공업화시대에 나타난 모순점의 정당화라는 천박한 모습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태동하여 자라기 시작한 진화론으로 사람들은 인간존재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였다.

실상 자신존재의 근원을 분자에서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신이나 거대한 절대적인 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다.
벗어나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사람들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 글에서는 시종 진화론의 오류를 지적할 것인데 진화론이 틀렸기 때문에 창조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볼 때 분명히 A가 틀렸기 때문에 B가 옳다고 성립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을 살펴 볼 때 많은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학교에서 진화론이 옳고 과학적이라고 배우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진화론은 옳고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는 거짓말이다,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진화론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참된 신앙을 버리고 산업혁명시대의 천박한 미신을 믿고 있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은 진화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이 그들의 허전한 종교적 욕구와 인간 존립의 가치등을 메꾸어 주고 있으므로 입을 다물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사랑하는 후배들을 위하여 입을 열지 않으면 안된다.
진화론자들 조차 순수한 진화론을 포기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들은 진화론 그 본래의 모습을 똑똑히 살펴보고 그 진상과 사실을 알려야 할 시기에 서 있다.

 

II. 진화론 발생의 배경

 

1. 진화론의 역사적 배경

 

인류사회는 진보하여 왔다는 명제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낄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현대사회는 많은 진보에 진보를 거듭해왔다.
옛날 한달이 걸려서 가던 거리를 한 두 시간내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집 안에서도 오늘 지구 반대쪽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미시적으로 또는 거시적 세계구조에 대하여 놀라운 지식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자연을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놀라운 발전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진보하였는가?
발이 더 길어져서 빨리 달릴수 있게 되었고 눈이 더욱 좋아져서 사물을 더욱 멀리 본다고 해서 인류는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위에서 살펴본 진보사항들은 인간 신체 구조와 지식의 확장에 불과하다.
교통수단의 발전은 발이 길어진 것이요,
통신 수단의 발전은 입과 귀의 기능이 확장된 것이며
사물에 관한 지식의 증가는 머리가 커진 것이다.

여기까지는 인류가 진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통하여 드러난 인간의 발자취를 생각해보자.
인류가 아직 미개하였을때는 인간의 포악성도 그렇게 드러나지 않았다.
겨우 자기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을 뿐이었으나,
칼이 발명되면서부터 인간은 다른 인간을 정복하고 살륙하였으며 총과 포가 발명되면서 이웃국가 전체를 짓밟아 노예로 삼기도 하였다.
급기야 이런 살륙의 무기는 극도로 발전하여 하나의 단추를 누르는 것으로만도 한 국가 및 지구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잔학성이 폭로 되었다.

 

인간은 인간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많은 죄악을 저질렀다.
나무를 연료로 하던 시절 그 피해는 적어 자연은 빠르게 회복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를 기능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하여 땅속의 화석연료(석유, 가스, 석탄) 등을 캐내면서 인간의 환경은 극도로 나빠져서 오늘날 심각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핵 에너지의 부작용은 인류를 파멸로 몰고올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다.

 

전쟁은 어떠한가?
황금만능주의는 어떠한가?
도덕적 타락은 어떠한가?

 

역사를 회고하여 본다면 신체는 더욱 커졌지만 인간본연의 마음은 더욱 포악성이 드러났다.
이것을 부정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인류의 신체는 기형적으로 자라고 영혼은 극도로 병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현 인류가 자랑하는 진보의 모습이다.

 

따라서 '진보' 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달라져야한다.
무엇이 진보하였나 하는것과 무엇이 더 소중한가 하는 것을 숙고해보아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혹시 우리는 어디에 홀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
사실상 빅토리아 시대 이전에는 인간의 사고속에 '진보'라는 의식은 없었다.
인간을 이제 그 '진보'라는 개념이 태동하는 역사적 현장을 살펴보자.

 

진보라는 파라다임이 형성되기까지는 많은 사상가와 과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진보라는 개념은 뉴턴역학과 관계가 매우 깊은데,
뉴턴역학은 케플러와 갈릴레이로부터는 역학적·실험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데카르트로부터는 철학적 영향을 받았다.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천문학적 데이타로부터 천상의 모든 법칙을 규명하였고 갈릴레이는 망원경의 발명을 힘입어 여러 가지 사실들을 발견하였으며 특히, 낙하법칙 등 지상의 모든 법칙들을 규명하였다.

 

케플러는 천상의 법칙, 갈릴레이는 지상의 법칙을 각각 정리하였다.
그러나 천상의 운동은 원운동이고 지상의 운동은 직선이나 곡선운동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때, 행운아 뉴턴이 지상과 천상의 모든 법칙을 총괄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내놓게 되었다.
뉴턴역학이 성립되면서 맹렬한 위력을 떨치게 되었다.
뉴턴역학을 이용하여 직조기, 증기기관차, 각종기계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들 기계를 힘입어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전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한달에 걸쳐 걸어서 가야만 했던 거리를 단숨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왕이나 귀족들만 입을 수 있던 옷들을 대량생산을 통하여 누구나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좋아진다', '나아진다','진보한다'는 관념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진보의 관념은 그 당시(빅토리아 시대) 일반적 사조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젖어 바라보는 것마다 진보된다고 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사회과학분야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철학의 분야에서는 변증법이,
생물과학의 분야에서는 진화론이 이 시기에 등장 하였던 것이다.
다윈은 진보라는 색안경을 끼고 그대로 생물을 바라본 것일 뿐이다.

 

2. 진화론의 사회적 배경

 

진화론의 핵심이론은 적자생존과 자연 도태설이다.
적자생존이란 "모든 생물은 개체마다 변이가 있으며 필연적으로 생존경쟁이 일어나는데 이에 적합하지 않거나 약한 개체는 결국 도태되어 생존할 수 없으며 멸종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진화론을 주장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음흉한 음모와 자기합리화적 계략이 숨어 있다.

 

모든 생물마다 개체변이가 있는데 이것은 국가에도 적용이 된다.
약한 나라가 있으면 강한 나라도 있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있으면 풍족한 나라도 있다.
생물에 있어서 각 개체간에 생존 경쟁이 일어나듯이 국가간에도 생존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힘이 약하거나 생존경쟁에서 지는 자는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제국주의의 약탈을 정당화 시켜주는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대량생산된 제품들을 식민지에다 비싸게 팔고, 현지에서 생산되는 원료를 싼값에 강탈하였다.
그리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 민족들을 개화 및 공업화라는 명목으로 경쟁적으로 침략하였으며, 자신들의 요구를 강제적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마침내 이들은 타 민족들을 총칼로 압제하여 식민지로 삼아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에 이르렀다.
식민지의 국민을 노예로 삼아 노동을 착취하고 인권을 짓밟아 인간의 생존 기본권을 말살하였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양심적 죄책감을 합리화시키는 새로운 원리가 요청되었다.

이 요청에 정확히 부응하는 것이 바로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는다"는 적자생존과 자연도태설의 원리인 것이다.

자연을 살펴볼때
"본래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을 수 밖에 없으므로 제국주의이면서 강자인 우리는 살고 식민지이고 약자인 너희는 우리들의 희생물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의 잘못은 없다.
자연의 본성 그 자체가 약육강식의 세계로 형성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라. 고로 너희는 우리들에게 침략되어져 마땅하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등장할 당시,
영국을 필두로한 산업혁명과 식민지 정책은 이미 성숙하여졌으며 이들은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반 인류적 행위에 대하여 도덕적, 양심적 자책감을 느꼈다.
이런 도덕적 의식과 자책을 메꾸어 줄 새로운 이론 내지는 사상을 애태워 갈구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정당화 시켜줄 그런 사상과 이론을 애타게 찾던 그 시점에 바로 진화론이란 것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Ⅲ. 밀러의 실험에 관하여 

 

1. 실험개요와 실험의 교육상황 

 

밀러의 실험의 개요는 이러하다.
원시대기의 상태는 암모니아, 수소, 메탄, 수증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이나 원시 지구에서의 방전으로 인하여 간단한 유기물이 합성되고, 이 유기물들은 다시 코아세르베이트를 형성하고 이것이 생명체를 형성한다는 것이 그 주요 골자이다.

 

천하를 얻은 것 같이 기뻐했던 이들은 곧 실망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 이후 발전된 입체화학(STEREO-CHE MISTRY)의 입장에서 보면 밀러가 합성해낸 것은 결코 생명체를 형성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교과서에는 여전히 밀러의 실험이 정당한 과학인양 소개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서의 진화론이란 하나의 학설로서 소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교리 내지는 신앙으로서 교육 되어지고 있다.
진화에 대한 진위여부에 대한 검토도 없이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그 기반위에서 많은 증거들을 수집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런 비판이 가하여 지지 않은채 학생들에게 무제한 교육되어지고 있다.
제반증거들이 매우 부족한 진화론을 믿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실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진화론이 논리적, 실험적, 과학적, 고고학적 근거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사상에 불과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본 글에서는 밀러의 실험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하여 살펴볼 것이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자연발생설은 러시아의 생화학자 오파린이 발표하고 밀러가 이것을 증명하였다.
밀러 이후 많은 사람들이 기체의 종류와 반응조건, 촉매 등을 변화시켜 많은 것을 합성해 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 속에서 밀러의 실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크다.
그야말로 진화론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2. 밀러의 실험에 대한 문제점

 

1) 단백질 형성과정에서의 문제점

 

인간의 몸은 물질로 구성되었다.
이 물질 중 가장 작으면서도 자체적으로 성질을 가지는 것은 분자이며, 분자의 한 형태가 아미노산이다.
그리고 이 아미노산이 모여 단백질이 되며, 단백질이 대부분의 인체구성 성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미노산을 단위로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아미노산에서 단백질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오파린의 가설 및 밀러의 실험은 결정적인 모순점을 안고 있다.
산소 존재의 유무에 관한 것이다.

오파린의 화학 진화설에 의하면 원시상태의 지구는 4가지 기체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각종 격심한 방전이 일어나서 이들 기체를 분해, 합성하는 과정에서 생명의 기원이 되는 유기물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유기물질 중 대표적인 것이 아미노산이고 아미노산이 모여서 단백질이 되고, 이 단백질이 인체의 구성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이 몇단계 중 아미노산에서 단백질이 형성되는 과정은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그 모순을 한번 살펴보자.

 

원시대기 상태에 산소가 존재했었다면 아미노산은 산소와 접촉시 즉각적으로 분해 및 파괴 되어진다.
또한 산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존층도 없었을 것이고 오존층이 없었다면 이번에는 자외선이 아미노산을 즉각적으로 파괴할 것이다.
이렇게 곤란한 점을 피하기 위하여 분자들이 물 속에서 진화했다고 말하고 있다.
물 역시 "질량 작용의 법칙"에 의해서 폴리펩티드 결합을 분해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단백질형성은 불가능 해진다.

 

2) 아미노산 형성 과정에서의 문제점

 

분자란 몇 개의 입자들이 모여서 화학적 성질을 나타내는 최소단위를 말하는 것이다.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도 일종의 분자이다.

분자란 몇 가지 사항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즉, 우리가 사람을 규정지을때 몇 가지의 성질로 그 사람을 규정지을 수 있다. 
그 사람의 키, 몸무게, 주민등록번호, 주소, 본적, 이름 등이 그것이다.

사람을 이와 같은 것으로 알아보듯이 분자는 끓는점, 녹는점, 무게, 전기전도도, 전기쌍극자, 광학활성도 등을 보고 분자의 신분을 알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광학활성이란 어떠한 분자에 빛을 쪼였을 때 그 분자가 빛을 회전시키는 성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빛을 회전시키는 방향과 분자의 구조에 따라서 좌선형 아미노산과 우선형 아미노산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빛을 회전시키지 못하는 물질을 라세미화합물이라고 부른다.
라세미화합물이 빛을 회전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좌선형 아미노산과 우선형 아미노산이 절반씩 섞여있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모두 좌선형이다.
(다만, 극소수 세균의 세포벽에 효소에 의해서 공격받지 않기 위하여 우선형인것이 있다)

 

이것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군인은 대부분 남자로 구성되어져 있다.
(물론 특수한 목적의 여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이다)
군인은 민간인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사람이고, 20대의 젊은이고, 군복을 입었고, 남자이다는 등의 많은 특징이 따라다닌다.

 

자!
그런데 어떤 "갑"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군인과 민간인,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 버스나 전철안에서 어떤 무리의 사람과 그 중에 남자들을 보았다고 하자.
이사람은 단순하게 "군인은 사람이다"라는 것만 알고 그 안의 사람들을 보고 "아 ! 군인이 많다" 고 이야기한다.
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 안에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어린이도 있고 노인도 있다.
어떤 집단속에 사람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저 집단은 군인이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군대는 여자도 갈 수 있으나, 생명체를 구성하는 성분에 우선형이 우선형 아미노산에 들어올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아미노산은 모두 좌선형의 아미노산이다.
좌선형의 아미노산 뿐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 신체의 구성물질이 고도의 선택성과 정밀도를 가졌다는 것이다.
바로 생명체가 우연이 아니라 계획에 의해서 피조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밀러가 합성해낸 것은 결코 좌선형의 아미노산이 아니다.
그것은 좌선형과 우선형이 50%씩 섞여있는 라세미 화합물 뿐이었다.
생명체에 있어서 라세미 화합물은 아무런 구성요소가 되지 못한다.
만일 우연에 의해서 생명체가 형성되었다면 이런 고도의 선택적 반응은 일어날 수 없다.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밀러의 실험이란, 지금까지 살펴본 입체화학이 이렇게 발전하고 일반화되기 이전에, 입체화학을 모르거나 무시한 사람들에 의해서 실험되어지고 환영 받았던 것이다.
이제 밀러의 실험이란 진화론의 어떠한 면도 지지해 주지 못한다.

 

Ⅳ. 진화론 일반에 관하여

 

1. 화석상의 모순점

 

진화론 초기에 진화론의 증거로서 제시한 화석들이 오히려 진화를 부정하는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다.
공룡은 중생대 초기인 삼첩기에 출현하여 쥬라기에 번성하고 백악기에 멸종하였다고 보고되어져 있다.
공룡의 멸종 연대를 대략 7000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고 인류의 출현을 100만년으로 잡고 있으므로 이 두 화석은 도저히 동시에 발견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동시에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진화론의 모순이다.

 

2. 통계학상의 모순점

 

진화론에 대한 통계학자들의 입장은 다소 냉소적이다.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논리를 억지 주장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진화론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원래 다윈의 이론은 확률의 개념에 의지하고 있다.
즉 시간만 충분히 있으면 확률은 아주 적게라도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한 개의 종이 다른 종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유기체의 변화는 전혀 우발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본질)을 저술한 유명한 우주 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주의 연령을 1백억 년이라고 하더라도 진화된 포유류의 세포핵에 포함되는 2천 개나 되는 유전자가 이루어지는 기회를 생각하면 이 시간은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 돌연변이에서 지금 어떤 유전자 정보와 같이 복잡하고 정연한 시스템이 될 확률은 회오리 바람이 쓰레기 찌꺼기를 말아올렸더니 제트기가 되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통계학상 확률의 폭이「10의 30승 분의 1」내지「10의 50승 분의 1」의 경우는 확률 제로로 간주된다.

 

수학적 확률에서 말해도 확실히 심프슨의 분석은 옳다.
확률적으로는 단세포의 생물은 대단히 복잡하여 단순히 우연에서 이것이 발생할 기회는「10의 78,436승 분의 1」이다.
이렇게 우발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단세포 생물이 생겨나는 확률은 통계적으로 말하자면 제로 이하라고 하게 된다.

 

1966년에 필라델피아의 위스타 생물학 연구소에서 진화론의 수학적 확률을 테마로 학회가 개최되어 세계적으로 저명한 수학자와 생물학자가 논쟁을 되풀이했다.
생물학자 그룹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학자 그룹은 전부의 계산을 마친 뒤, 생명이 우발적인 돌연변이에 의하여 자연히 발생한다고 해도, 그 확률을 유리하게 할 시간은 이 우주의 역사보다 훨씬 더 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컨대 이 점에 관해서 파리 대학의 컴퓨터 학자, 마르세르 슈젠버거 박사의 결론은 이렇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사실, 현실의 상황대로 컴퓨터로 슈미레이트를 시도했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보아 기회는 <10 의 1천승 분의 1>이하, 즉 제로라고 나왔다. 다시 프로그램을 수정하여 우연성을 크게 잡아 프로그램을 다시 수정하였으나, 결과는 같아서 그 이상 해 보아도 컴퓨터가 폭발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학자들은, 최첨단의 컴퓨터와 최고도의 수학 모델을 구사한 계산을 기초로 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확률론의 입장에 서서 진화론을 검증하여 보았으나, 다위니스트들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뿐이었다. 요컨대 생명이 발생하기에는 지구의 역사가 너무 짧다. 올바른 과학적인 진화론은 이제부터의 새로운 자연법칙의 발견과 해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단순한 공상 이야기였다는 것이 최첨단의 현대과학에 의하여 실증되었던 것이다.

 

진화론은 신앙이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그 신흥종교를 맹신하고 있다.
그러고서는 현대인이라고, 과학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이 종교의 추종자임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3. 최근 진화론의 대변혁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진화를 자연의 진리로 믿고 있지만 진화론자들은 오히려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알지 못한다.

진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대진화란 것으로서, 원숭이에서 사람이 된다는 식으로 다윈이 주장했던 원래적 개념의 진화이다.
다른 하나는 소진화란 것으로서 종(種)내에서의 진화이다.
사람이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는 식이다.
이것은 본래적 개념의 진화가 아니다.

 

다음의 글을 보자.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이 대진화를 포기하고 소진화만을 인정했다.
1980년 10월 16 19일 "종의 기원"이 발표된 이래 가장 획기적인 변혁이 일어나게한 회의가 열렸다.
진화론과 관련되는 여러분야. 즉, 생물학, 분자생물학, 진화유전학, 화석학, 해부학 등의 세계적 권위를 가진 진화론자들 160명이 시카고의 한 박물관에 모여 "대진화"란 제목으로 회의를 열었다.

 

결론부터 간단히 소개한다면 소진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연장해서 대진화가 일어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쌓여진 새로운 과학지식, 특히 분자유전학과, 화석자료로부터 오랫동안 진화론 내부에서도 도전을 받아오던 것이 냉철한 사고를 한 진화론자들이 용기있게 과학적 사실을 시인하고 발표한 것이라 생각된다.

 

Ⅴ. 결론

 

생명체의 아미노산에 관한한 라세미화합물은 전혀 가치가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라세미화합물로써 우리 인간을 만들수는 없다.
밀러가 실험적으로 합성해낸 것은 바로 라세미 화합물인 것이다.
양심적인 과학자의 눈으로 볼 때 밀러의 실험에다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작은 의미조차 부여하기 어렵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흩어진 쓰레기를 쓸어모아 쓰레기더미를 만들었다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를 증명하려고 도입하였던 화석들은 오히려 진화가 옳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으며, 나타날 것으로 확신했던 중간 화석들은 백수십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하나의 중간화석도 찾아내지 못했다.
발생학적, 해부학적 증거 등 모든 것들이 진화론을 지지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기존의 진화론을 버리고 돌연변이에 의한 새로운 진화론을 신봉하기 시작했다.

 

궁여지책(窮餘之策) 이다.
진화를 증명해 주는 화석이 없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나타나리라고 무작정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인간 자신을 정당화하는 여러가지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일어난다.

우리의 신앙은 과학을 요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학 또한 하나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붙들어 주심으로 족한 것이다.

"창조하심" 이 분명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지으심에 대한 신앙이라면 "진화되어짐"은 분명 하나님이 유기될 자를 향하여 그들에게 준 그들에게 적합한 신앙이다.

창조와 진화는 더 이상 과학이라는 전장터에서 싸워서는 안된다.
오히려 종교라는 전장터로 옮겨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