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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이스라엘의종교

redcap 2005. 7. 4. 14:49
“초기 이스라엘종교는 이웃종교와 대화”
[한겨레   2004-08-18 18:10:10] 
[한겨레] 김은규 성공회대 교수 세계교수불자대회서 발표 17일부터 19일까지 강원도 인제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 제1회 세계교수불자대회에서 김은규 교수(성공회대 신학과)는 ‘불교와 기독교, 그 상생의 길’을 발표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대해 보이는 배타성의 근거가 되는 구약의 ‘미신숭배 거부’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집중 조명한 이 발제문을 간추렸다. 편집자

종교는 자연과 우주 속에 있는 인간 실존의 문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도화되고, 교리화되고, 절대화되면서 인간을 구속하고 지배하는 역기능을 보였다. 각 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속성과 갈등을 보이면서 자기 확대를 이루었다.

특히 기독교는 근현대사에서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하는데 첨병구실을 했다. 기독교는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성경과 제국주의’를 앞세워 지난 3백 여년 동안 토착문화와 토착종교를 무시하고 말살하면서 ‘선교’를 했다. 기독교가 이렇게 다른 모든 종교와 사상들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근거는 구약의 ‘우상숭배 금지’에 있다.

초기 이스라엘 종교는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 고대근동 지역, 특히 가나안 지역의 종교의식과 사상, 종교절기, 신화, 종교문학 등을 적극 수용했으며, 이를 토대로 종교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신의 명칭 엘(신중의 신)을 비롯해 가나안의 농경문화와 종교의식, 희생제의 등은 가나안의 종교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두 신앙 사이엔 차이가 분명했다. 농경문화의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 신앙이 요구하는 것과 같은 검소한 생활, 고도의 윤리적 요구가 없었다. 풍요와 다산에 대한 기원은 기복주의나 성적인 무질서로 흐르기도 했다.

국가가 형성되면서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북과 남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제국과 이집트 제국이 위치해 있고, 동쪽은 아라비아 사막이 펼쳐지며, 서쪽은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면초가였다. 두 제국 국가들이 힘의 균형을 이를 때 이스라엘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났지만, 한 편이 강하면 이스라엘은 항상 정치적으로 예속됐고, 그것은 종교적 종속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종교개혁이란 바알신앙과 제국주의 지배권력에 대한 반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바알신앙에 대한 이스라엘 종교의 반격이자 정치적 독립운동 시도였다. ‘우상숭배 금지’ 선언은 이스라엘 종교의 주권 회복 선언이며, 동시에 제국주의에 맞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와 함께 우상숭배 거부는 이스라엘 종교에 더 높은 수준의 윤리적 요구를 이끌어내는 요청이기도 했다. 내부적으로 형식화되고 제도화되어 가는 것을 거부하고, 진정으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려는 것이기도 했다. 신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가 각종 법 규정에 갇혀 버린 제도화된 유대교를 거부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피며, 인류의 평화를 위하는 길을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기독교는 중세와 근현대사에서 제국의 권력을 앞세워 제3세계 국가들의 종교와 문화를 초토화시켰다. ‘하나님 나라’의 내용은 이 땅에 인권과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이루는 것인데도 오로지 이교도를 기독교로 개종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기독교는 초기 이스라엘 종교가 그랬듯이 이웃 종교와 대화하고 상대의 장점을 취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불교로부터 수행, 생명 존중, 고통의 이해, 깨달음의 가치 등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서구의 이원론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