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5. 카쥬라호의 불가사이한 힌두교 사원들

redcap 2007. 6. 20. 23:45

인도의 중북부에서 중요한 문화유적이 있는 도시는 아래와 같다.

 

델리~아그라~카주라호(호수가 아니고 도시이름 이다) 부근만 확대 하여 보면 아래 지도이다.

카주라호는 마드야 프라데쉬 주의 북동쪽에 있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자전거 한대만 있으면 온동네를 돌아볼 수 있다. 지도에서 붉은 선은 기차길, 델리에서 카주라호를 갈려면 동남쪽 기차길로 600 Km를 달려가야 한다.

 

 

   인도 북부에서 델리 다음으로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유적지가 카주라호이다. 그 이유는~

 

 

많은 한국 관광객이 서부사원을 찾아 오므로 정문 앞에는 현지인들이 하는 짝퉁 한국식당이 4~5개 된다.

그 중에는 우리가 묵었던 산티 게스트하우스 내 고향식당이 한국식과 근접하게하여 맛이 제일 좋다.

 

1. 카주라호 유적 감상 전에

 

    카주라호의 힌두교사원 유적을 감상하기 전에는 힌두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포로노 사진을 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 비네이락 저, 박지숙 번역, 김영사발행, "힌두교" )

 

   (1). 힌두교는 전세계 인구의 약 15%에 해당하는 10억의 신도를 가진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이지만, 신자가 인도와 네팔 그리고 주변국에만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는 낯설은 종교이다. 또한 이종교는 창시자도 없고 종단도 없기 때문에 그 범위를 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2). 힌두교의 기원은 유럽계 아리안족이 인도로 이동하여 인도의 지배계급이 되고, 카스트제도(엄격한 신분제도)가 만들어 지던 베다시대인 BC1500년 경부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때 까지 각지에 있었던 물신숭배의 샤머니즘이 아리안족에 의하여 진화한 것으로 본다. 물신숭배 사상처럼 힌두교는 각종 신이 많은 다신교이며, 신의 숫자는 적게는 몇 천명에서 많게는 몇 만명이나 된다. -- 힌두교는 또한 신자에게 강제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많은 신 중에서 각자 자기가 좋은 신을 모시면 그만이다. 

 

 

   민속공연 전에 신에게 경배하는 무희의 모습

 

   (3). 이렇게 많은 신 중에 3대신이 있는데, 창조의 신 <브리흐마>, 정의의 신 <비쉬누>, 파괴하고 또 재창조하는 힘의 신 <쉬바>이렇게 3명이다. 이중 비쉬누는 때로는 동물로 때로는 다른 신으로 변신하여 나타나는데 이를 비쉬누의 아바타라고 한다. (요즘 인터넷에서 쓰는 자기의 분신을 뜻하는 아바타라는 용어는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카주라호 바라하사원(서부사원 지구내)에 멧돼지로 변신하여 나타난 비쉬누 신의 모습

 

  (4). 다음으로 쉬바는 인도인들이 가장 숭상하는 신이며, 코브라가 들러진 목에 삼지창을 든 모습이 제 모습이지만, 더 많은 경우에 남자의 발기한 성기 모양으로 나타난다. 즉 아래 사진은 남근바위(우리나라 식)가 아니고 쉬바신이다. 이와같은 모습을 링가(Linga)라고 하며, 쉬바신을 모신사원에는 반드시 있고, 동네거리 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링가가 있으면 그 주위를 잘 둘러 보면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 요니(Yoni)가 반드시 있다. 이 요니는 대개 물이 흐르게 되어 있고, 인도 여자들은 이 물을 이마에 바르고 중얼중얼 기도 한다. 우리가 바라나시의 뿌자G/H에 있을 때 그 좁은 골목길에도 링가와 요니가 아주 많았다.

 

  카주라호 서부사원지구 쉬바신을 모신 비쉬와 나트사원 내의 요니(Yoni).

 

 

이 비쉬아나트 사원 앞에는 쉬바신이 타고 다니는 <난디>(소와 비슷한 상상의 동물)가 큰 전각안에 들어   있다.

 

   이와같이 힌두교의 신이 발기한 음경의 모양으로 여기저기 모셔져 있는 것을 다른 종교인들이 보면 이해를 못하겠지만 인도인들은 이와같이 늘 가까이에 성문화를 안고 있었다. 이런 힌두신앙 아래 <까마수트라>라는 책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카주라호에 있을 때 잡상인들이 끈질기게 사라고 조르던 책이다. 내용은 성행위의 각종 자세가 그림과 글로 쓰여진 것으로 중국의 <소녀경>과 흡사하다.

 

   고대 인도말로 까마(Kama)는 성 또는 성애를 뜻하는 말이다. 이 까마수트라는 4세기 경에 바츠야야나 라는 경전학자에 의하여 쓰여졌고 그 목적은 귀족과 상인계급에게 성애를 바르게 가르치기 위한 계율서라고 한다.

 

   우리가 여행중에 자주 만난 다른 힌두교 신으로는 <가네샤>와 <하누만>이 있다. 가네쉬는 코끼리 모양을 하고 있는데 상업의 신이다. 즉, 장사, 사업이 잘 되게 해주는 신이다. 그래서 여관, 자동차, 가게 등에는 이 코끼리 신이 많았다. 하누만은 원숭이 모양을 하고 있는 농사의 신이다. 인도에서는 손오공을 하누만 이라고 부른다.

 

 

   2. 서부사원 세계문화유산 감상하기

 

 

   서부사원지구 입구-- 세계문화유산 (1986년 지정 인도 10호)이라고 큼지막하게 간판을 심어 놓았다.

 

    이제 카주라호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쓴 서암스님의 글을 한번 음미하고 사원으로 입장합시다.

 

  "지구위의 모든 종교가 성욕을 억제하고 금지의 대상으로 다룬데 비해 힌두교는 性愛 속에 천국의 개념을 비밀스럽게 담아 둔 가장 현실적인 향락의 실천인지도 모른다. 성에 관한한 조용히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배우고, 믿어온 우리에게 이곳에서 보여주는 것은 금기와 사랑과 유혹에 대한

자유인 것이다." (인터넷 카페 글 중에서)

 

 

   카주라호는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 이지만 1000년 전에는 찬델라국의 수도였다. (인도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처럼 수십개의 왕조로 나누어 진 시대가 있었다) 따라서 이곳 힌두사원들의 건립연대를 서기

950년~1050년 사이로 본다. 당시에는 80여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스람 지배시절 다 파괴되고 지금은 22개의 사원이 남아 있다. 이 사원들을 위치에 따라 서부지구, 동부지구, 남부지구 3개로 나누는데 보존 상태가 좋고 조각이 화려한 서부지구 만이 세계유산이다. 입장료도 서부지구만 받는다.

--- 위 사진은 서부지구에 있는 여러 사원 들의 모습

 

 

 위의 사원 들을 가까이 가보면 모두 이와같이 벽면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사원의 건축에 사용된 재질은 대리석이 아니고 모두 붉은색 사암(모래바위)이다. 정교하게 조각하기에 는 대리석 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다.

 

 

  이와같은 성행위를 묘사한 조각을 인도말로는 미투나(Mithuna)상 이라고 부른다.

 

 

힌두교 사원에는 어느곳이나 벽면을 잘 보면 얼른 눈에 안띄는 은밀한 곳에서 이런 미투나 상을 몇개씩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카주라호 서부사원)

 

 

  우리가 둘러본 호반도시 우다이뿌르의 <작디쉬만디르>사원 벽면에서도 몇개 발견했었다.

  (위 사진은 카주라호 서부사원)

 

 

엘로라의 웅장한 힌두교 석굴사원인 <카일라쉬 사원>의 내부에도 여러 곳이 있었습니다. 김고문님은 보았다는데, 나는 얼른 못찾아서 흰 셔츠 입은 안내원에게 10루티(250원)주었더니 후라쉬 들고 여기저기 찾아 주더라구요. (위 사진은 카주라호 서부사원)

 

 

위의 조각은 서있는 장면 같으나, 해설서에 보면 누워있는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남자가 목에걸고 있는 목걸이 줄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았기 때문 이랍니다. 

 

국경을 넘어 네팔의 카트만두 달발광장의 힌두교사원 (여기는 목재건축물)의 벽면에도 위 사진과 너무도 비슷한 것 들이 여러군데 있어서 놀랬습니다.(사진은 네팔편에서 보여드릴것임)

 

   그러나, 이 카주라호 사원들은 무더기로 이와같은 미투나상을 조각해 놓았고, 또 그 장면도 다른 힌두사원에 있는 것 보다 훨씬 에로틱하게 되어있는 이유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하였지만, 아직 그 이유를 못 찾았답니다.

 

   다음의 조각들은 카주라호의 걸작들로서 카주라호 안내서에 많이 실려있고, 설명도 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인도인 가이드가 이야기해 준 설명을 적어 봅니다)

 

 

  전갈로 자위하는 여인 --- 전갈이 스믈스믈 기어오르는 감촉이 좋아서 옷을 서서히 벗고있는 장면 

 

 

 성행위중인 한쌍이 고난도 자세를 구사하려고, 부축해 달라고 두여자를 불렸는데 불려온 여자들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드디어 두여자가 도와 주어서 성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두남자와 두여자가 함께 즐기고 있는 장면.

 

 

 행위중인 여자의 손이 다른 여자의 은밀한 곳을 애무하고 있는 중 --- 벽면에 가장 많은 조각이 이와 비슷한 장면 같았음.  

 

 

   말과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한 여자가 눈을 가리는척 하고 살짝 보고 있음.

 

   다음의 작품들은 그 옆의 오래되어 부식이 상당히 진행된 사원의 아래 벽면에 있는 것으로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내용은 재미있다.

 

 

  두 남자와 한 여자 -- 그런데 삽은 왜 들고 있을까?

 

 

 

 

 카주라호의 불가사이는 국내외에서 아직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1. 왜 이곳만 이렇게 미투라가 많을까? 무슨 특별한 사정이 당시에 있었을까?

 

  <1> 어떤 인도인은 당시 불교와 경쟁하여 민중의 관심을 끌어 오려고 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10세기 경에는 이미 인도에서 불교가 자취를 감춘 후이다.

 

  <2> 어떤 인도인은 까마수트라의 책이 멸실될 것에 대비하여 보존이 잘되는 돌에다가 까마수트라의

        내용을 옮겨 놓았다고 한다.

 

  <3> 또 다른 이는 이 사원에 들어와서 이 벽면을 보고 성충동을을 느끼면 수양 부족이므로 사원 안에

        안들어 가고 집으로 돌아 가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4> 또 다른 사람은 정 반대로 사원 밖에서 충분히 즐긴후(?) 사원 안에 들어가서 기도할 때는 잡념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등등 사람들 마다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도 재미가 아닐까?

 

2. 왜 이스람교인들은 미투라가 적은 사원들은 다 부수어 버리고 미투라가 많은 서부사원 들은 보존

    했을까?

 

   우리나라 박대순씨는 <카주라호 사원조각의 연구>(1998)로 한남대 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는 등 우리나라에도 카주라호 조각 연구가들이 꽤 있다.

 

.... 다음에는 카주라호의 자인교 사원 편이 이어집니다 ....

... 

출처 :문화유적 찾아보기 원문보기 글쓴이 : 정지영알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