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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 김 근수 Intruction : 제 4 복음서와 공관 복음은 계시의 차원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해석은 전혀 다르게 이해하여야 하는 함수 관계가 있다. 필독 도서 : 마가의 기독론, 마태 복음서 해석, 복음서 이해, 약 복음서(-로뢰인 뵈트너), 비유에 관한 서적들( J.Jeremias, C.H.Dodd등 ), 시간의 개념, 계시의 흐름 - about Heaven of God and eschatology (그리스도와 시간, 신약의 기독 written by Osca Cullmann -인식적 메시야 입장). 랄프 마틴 - 역할론적 메시야 의식론자. 예수님의 자기 계시 written by G. Vos Conflict on Mark's Gospel written by Jack Dean Kingsberry
*공관 복음 해석 원리* :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다루고 있으므로, 각 개체의 다양성뿐만이 아니라 통일성까지 전제하는 상태에서 해석을 시도하여야 함.
1. 공관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서에 나타나는 주된 개념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님의 일성 설교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라는 것이었다. 개혁이 한 때 언약을 Primary conception으로 오해하던 때가 있었지만, 세계 제 2차 대전이후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시자되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은 구약적 배경을 상당히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멜렉과 멜레쿠트라는 단어는 왕이라는 동의어 개념으로 함께 사용되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은 표현되지는 않지만, 창조라는 개념과 함께 시간과 공간에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낸 것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 에덴에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들이는 것이었다. 히브리말 샬롬이란 평화라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에는 죄가 없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 후 인간의 타락 사건은 단순히 타락이라는 단순한 개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사탄의 침노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구속사라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전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약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와의 대결 구도는 마지막 날의 때까지 계속 된다.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이중 구조는 종결되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만이 유일한 통치 영역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사단의 나라 사단나라의 종결
< 이중적 대결 구도 >
*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 * : 마태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 혹은이라고 표현되어 지고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의 수신자들인 유대인들과의 접촉점을 찾기 위함이다. 유대인들의 통념속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룰 수 없는 율법적 규제들에 의해서 이다.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 여기에 현존한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설교의 주제인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현존 을 이야기한다.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라는 말씀은 in you 가 아니라 among you라는 해석이 적합하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와 아직 아니는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와 미래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양면성은, 현재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진행되어지고 있는 상태성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예수님의 인격 그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사탄의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미 라는 말은 원리라고 이해하여야 하며, 아직 아니란 실제로 이해한다. 마태복음의 첫 장은 임마누엘 사건으로 시작하고, 마지막 장을 임마누엘의 선언으로 끝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마태복음의 거대한 구조이다. 예수님의 치유의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의 현존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마10:17-18). 축사 역시도 하나님의 나라의 현존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이사야서에 예언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이미 말씀되어진 바 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인겨과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의 현존을 가지고 온다. - 천국의 현재적 성취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와 미래성을 8가지의 비유를 들어 가르치고 있다.
* 마가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 : 마태복음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현재, 미래적인 면이 나타남.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멸망이전에, 네로의 박해를 받는 성도들을 향하여 기록된 것이 정설. 목적은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되새기어,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고난에서의 승리를 위해 격려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이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 다윗적 왕인 영광의 메시야라는 관점인 마태의 개념과 다르다. 신 15:18절에 나타나는 나와 같은 선지자라는 말이 신약의 영광의 메시야라는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 대중의 마음을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메시야관을 배척하시게 된다. 모세는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하면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이 재현될 것임을 말하였는데, 이것이 마가복음서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연관지어서 다루어 지고 있다. 모세는 옛출애굽의 지도자이나, 예수는 새로운 영적 출애굽의 지도자이시다(Exodus Typology). 백성이 예수님을 바라 볼 때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 로 이해함. 백성들과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영광의 메시야관과 예수님 자신의 고난받는 메시야의 두 가지 기둥으로 그 흐름이 이어져 가고 있다. 마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에는 고난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누가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 * : 제자들의 선교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를 그 나라의 현제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령의 중심하는 제자들의 선교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에 항상 등장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진입하면 거기에는 사탄의 통치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다는 것으로 설명하는 다른 복음서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차이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선교의 상관 관계이다. 아버지가 나를 보내시는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니라 - 성령의 선교 시대는 곧 제자들의 선교의 시대임을 이야기한다.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단축하는 인간측의 유일한 노력이다. 모든 족속이 복음을 듣게 되는 그 날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 요한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 * : 영생, 생명이라는 말로만 하나님의 나라로 설명하고 있다. 영생이라는 말을 17회 사용하고, 생명이라는 말을 19회 사용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천국이라는 말이 33회, 마가복음에는 37회 사용되고 있다. 요한 복음서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을 영생에 들어 간다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마16:23; 눅18:18-24;막10:23-25) 요한 복음에서는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이 완성되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는 이미 모두 실현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종말은 없다는 의미가 된다(C. H. Dodd). 이것은 자유 주의 신학의 종말론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시작된 종말론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어서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 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기 시작하여 미래에의 완성을 향하여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지고 있다는 견해이다(A.. Hoekema).
# 공관 복음의 방법론 # * 마태복음 제 1 장 * : Study case. 구조주의가 최근의 복음 이해의 방법론 - 마태복음 전체에 몇 가지 구조가 있다는 전제로 시작됨(Strutualism). 마태 복음 전체의 구조를 파해쳐 보면, 저작자의 의도를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복음서 전체 이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 성령의 조명, 저자의 설명들의 세 가지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설화들은 논리적인 귀결이 있다(시작-끝).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 수훈을 통해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시는데, 결국에는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심판하신다는 논리적인 귀결이 있다. 나아 오매라는 말씀은 우리 성경에서 한 번의 번역상의 오류를 범했는데, 헬라어 (to: ~ 에게로 ) (나아오다) 는 말이 1회 데려 오다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사실상 나아 오매로 번역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 다 논리적인 귀결이 있다(일립 강태국 박사 미수 기념 논문집의 김근수 교수의 논문 p.133을 참조하라). 그러나 13장의 천국 복음은 따로이 귀결이 없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우리 번역에는 실상은 다윗적 나라에 대한 다윗의 족보를 다루고 있음을 볼 때에는 그려 하려니와, 다윗의 왕국, 다윗적 기독론 등을 중요하게 의식해야 한다.
[메시야의 족보] : 영원한 나라를 주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히브리어 다이드(다윗) 는 14-14-14의 숫자적 개념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혈통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의 족보는 메시야의 설명을 위한 무대 장치이다(남성적 생산 개념, 그러나 마가의 족보는 다르다). 예수님에 이르러 서는 갑자기 능동태로 바뀌며 왕의 혈통은 종료되고, 마리아의 아들로 그리스도께서 소개되고있다. 당시는 이름을 지어 주는 자가 아버지가 되는데, 예수님의 족보는 엄격히 말해서 다가 오는 메시야의 나라가 잠정적으로 보여 주는 여명을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선교의 명령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유대인들의 좁은 혈통적 개념에서 벗어나 범 세계적(Universialism)인 구원 개념이 새롭게 도입되고 있다. 마태 복음의 15개의 큰 구원의 사건들(이방인들이 구원받는 사건)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대인에게 이 복음이 쓰여 진 것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구원 개념을 바로 잡기 위해 기록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하나님의 현현] 등에 관한 논의는 생략됨.
* 마태복음 13장 * - 배유 해석에 관한 내용 - : 공관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거의 비유에 의존하고 있다. `비유의 정의 - 지상적 이야기 속에 천상적, 계시적 의미가 개입되어져 있는 것. 비유의 형태로는 비교, 상징, 속담, 수수계기(일일이 묻고 대답하는 것), 규칙(rule), 은유(직접적 표현: ~~처럼, like, as), 유사(paromiya), 설화(탕자 의 이야기 같은..).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이 은유와 직유의 방법이다. * 비유 해석의 원리 * : Mono - focus : 하나의 비유에서 하나의 결론만을 이끌어 낸다. Multi - focus : Allegorical, 교훈의 초점이 여러 개, 비유에서는 오직 하나의 교훈만이 초점이 되어야 한다.
* 씨비유 * : 작고 비참하게 시작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웅적인 완성을 가져 온다는 의미를 가지는 비유이다. - 제자들의 패배 의식 다음에 배치되어 있다. 씨 자체가 초점이 되는 비유이다. -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성을 나타냄. 지금은 미미하나 나중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 양과 염소의 비유 : 양과 염소의 공존,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갈라지게 된다. * 겨자씨 비유 : 적은 씨이지마는 신속하게 자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성을 이야기한다. - 하나님의 나라의 내면적인 감화력. * 감추인 진주 : 발견된 보물은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 그 주관적인 가치가 객관적으로 변하여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성을 강조. * 그물 비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되, 결국에는 성도와 악도의 갈림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 장터의 아이들 (마11:16절 이하)* 두 패의 아이들 : 잔치집과 초상집으로 표현됨.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의 대조,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며, 예수님은 새시대의 개먁을 가져 오는 존재이다. 스가랴서의 잔치집 - 포도주의 기쁨이 넘치는 메시야 시대의 현상, 큰 산들이 단 포도주를 흘림... :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을 모두다 거부하는 그 시대의 불신앙을 질책하는 메시지이다.
* 포도원 품군의 비유 ( 마20:17절 이하) * : 수확기에 달한 포도 수확에 대한 예화 - 이스라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절대 빈곤 계층 농민들의 삶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노동 임금에 관한 관례). - 일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비로운 주인의 모습. 이스라엘의 포도원 비유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비유함.
* 맏아들과 차남 * : 맏아들은 당시의 지주 계층을, 차남은 빈민 계층을 의미한다. 사본중에는 사본상의 중요성이 같은 사본들에서 어던 것에는 맏아들이 결국에 순종한 것으로 나타나고, 다른 것에서는 차남이 순종한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다른 성경의 일반적인 조명을 받아서 차남을 빈민 계층으로 이해하는 것이 수월하다.
* 소작 농부의 비유 * : 아들의 비유, 소작 농부의 비유와 관련된 종말론적인 비유.
* 혼인 잔치의 비유(마22:1절 이하) * : 봉말에 있을 선교의 사역에 대해 가르치심, 종말의 예조인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달되는 사건은 아직 나타나지 않음. 성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는 아들은 당시의 도시 국가의 개념에 비추어 외국으로 나가는 선교를 의미한다.
* 무화과 나무의 비유 (마24:32절 이하) * : 무화과는 가장 흔한 나무의 하나, 평화를 상징. 가장 늦게 돋는 나무, 잎보다 열매가 먼저 열림, - 예루살렘과 비유되어 지고 있다. 성전 청결 사건과 관련되는 예연자적인 행동이다.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의 잘못을 일개우기 위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 예수님의 재림의 홀연성.
* 열처녀 비유(마25:1~13) * : 이스라엘의 결혼 예습에 대한 선지식이 필요하다. 주로 가나한 계층들은 단독으로 혼인식을 하지 않고 단체로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공동 혼인식에서는 신부들이 면사를 쓰고 , 신랑들은 자기의 신부를 찾아 가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신부들은 신랑이 자신의 얼굴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불을 블고 서서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결혼 관례에서 발생되는 에피소드들에 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결혼의 3단계중에서 마지막인 예식전 가지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함. 한 번 불을 붙이면 대략 15분 정도 타는 올리브유를 준비하여 신랑을 기다리게 되는데, 기름이 부족하게 되어 혼인식을 망치게 됨. - 임박한 종말론에 대한 잘못을 지적.
* 착한 사마리아 사람 : 사랑의 실천적 개념을 강조하는 비유, 유대인들은 인종적인 편견에 대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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